판단의 해상도가 선명해졌다: 영업 담당자가 한 달 만에 15개 시스템을 만들며 배운 것
비개발자 GTM 담당자가 Claude Code를 배우고 한 달 만에 15개 영업 시스템을 만들었다. 자동화 이야기가 아니다. 영업 감각을 코드로 옮기면서 생긴 일에 대한 기록을 공유하고자 한다.
영업 담당자인데 왜 내가 지금 데이터베이스 테이블 스키마를 설계하고 있지?
설날 연휴에 AI Native Camp에서 Claude Code를 배운 뒤로 한 달이 지났다. 지금은 15개 시스템이 매일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리드 스코어링, 이메일 추적, 펀넬 시뮬레이션, GTM 대시보드, 마케팅 엔진.
근데 진짜 변한 건 시스템이 아니다. 내가 일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전에 'AI Native 인재의 조건 3가지'라는 글을 썼다. 암묵지 명시화, unknown unknowns, 피드백 루프. 그건 이론이었다. 이 글은 그걸 한 달간 실행한 기록이다.
1. 내가 뭘 모르는지 몰랐다: Unknown Unknowns의 연쇄
리드 하나 처리하려다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배웠다
AB180에서 매주 15시간을 리드 퀄리피케이션에 쓰고 있었다. 인바운드 리드가 들어오면 회사가 진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이메일 도메인을 보고, 스팸은 걸러내고, 점수를 매기고, Mixmax 시퀀스에 넣는다. 전부 수작업. 영업 담당자가 파이프라인을 쌓아야 할 시간에 데이터 정제를 하고 있었다.
"이거 자동화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문제라고 봤다. 근데 시작하니까 연쇄반응이 터졌다.
리드 데이터를 가져오려면 → Google Sheets API를 배워야 했다. 회사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면 → LLM 스코어링(Groq API)을 붙여야 했다. 결과를 자동으로 시퀀스에 넣으려면 → Zapier 웹훅과 Mixmax API를 연결해야 했다. 매일 자동으로 돌리려면 → GitHub Actions 크론잡을 만들어야 했다.
하나를 해결하려 하면 세 개의 모르는 게 튀어나왔다. 이게 unknown unknown의 실체다. 배워야 할 것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다.
처음 만든 버전은 처참했다. 오탐률 30%가 넘었다. 실제 회사인데 스팸으로 걸러내거나, 스팸인데 통과시키거나. 기준을 여러 번 갈아엎었다. 3단계 분류(Qualified/Maybe/Unqualified)에서 100점 만점 스코어링으로 바꾸고, 스팸 패턴 규칙을 7개 이상 추가하고, 가중치를 discriminative power 분석 기반으로 재조정했다.
결과? 주 15시간이 0시간이 됐다. 매일 아침 GitHub Actions가 돌면서 리드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이메일 로깅을 자동화하려다 분류 AI를 만들었다
아웃바운드 영업에서 제일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reply rate다. 근데 BDR팀이 보낸 이메일의 답장을 Salesforce에 기록하는 일이 전부 수작업이었다. 매일 1-2시간. 누가 보냈고, 답장이 왔는지, 답장 내용이 뭔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기록했다. 이러니 캠페인별 reply rate 분석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다.
"로깅을 자동화하자"가 시작이었다. Mixmax API로 발송 데이터를 가져오고, Gmail API로 답장을 감지했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근데 답장을 가져오니까 새로운 문제가 보였다. 답장의 종류가 다르다는 거다. 미팅 요청, 긍정 반응, 거절, 질문, 부재중 자동응답, 바운스. 아웃바운드 세일즈 해본 사람은 안다. "미팅 잡자"라는 답장과 "관심 없다"는 답장은 같은 reply가 아니다. 이걸 구분 못 하면 reply rate가 높아도 의미가 없다.
GPT-4o-mini로 자동 분류를 붙였다. 답장이 오면 AI가 카테고리를 매기고, 요약을 쓰고, Salesforce Lead Notes에 자동 업데이트한다. 이제 캠페인별로 "미팅 전환 답장 비율"까지 보인다. 원래 문제(수동 로깅)를 풀려다가 더 큰 문제(이메일 인텔리전스)를 발견하고 해결한 거다.
매일 1-2시간이 0시간이 됐다. BDR별 성과, 캠페인별 답장률, 미팅 전환율이 대시보드에 실시간으로 쌓인다.
2. "감"을 시스템으로 바꾸다: 암묵지 명시화
내가 리드를 보는 눈을 코드로 옮긴 과정
리드 퀄리피케이션 시스템을 만들면서 깨달은 게 있다. 자동화가 된 건 코드 덕분이 아니라, 내가 판단 기준을 말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이메일이면 25점, 무료 이메일이면 5점." "Groq가 회사 존재를 확인하면 35점, 확인 못 하면 0점." "이름에 test, asdf, sample이 들어가면 자동 탈락."
왜 회사 이메일에 25점을 줬을까? 회사 이메일로 문의하는 사람은 사내에서 솔루션을 찾는 중이라는 신호다. Gmail로 오는 건 개인적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 이런 판단을 몇 년간 리드를 만져오면서 쌓았는데, 정작 머릿속에만 있었다. "이 리드는 괜찮은데"라는 직감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 직감을 숫자로 분해하니까 비로소 자동화가 가능해졌다.
더 신기한 건, 코드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준 자체가 정교해졌다는 거다. "회사 이메일이면 좋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걸, "도메인이 회사명과 매칭되는 정도"까지 세분화하게 됐다. 영업 경험이 오래될수록 무의식적으로 처리하는 판단이 많아지는데, 그걸 꺼내놓으니까 오히려 내 판단 체계가 업그레이드됐다.
GTM 전략을 "느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Core Plan의 미국 시장 런칭을 준비하면서 이 패턴이 전략 레벨로 확장됐다.
21개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고 ICP를 정의했다. 3개 세그먼트(인디 멀티앱 파운더, 앱 포트폴리오 매니저, 프리-페이드 UA 스타트업)로 나누고, 각 세그먼트의 burning pain이 뭔지, 지불 의사가 어디까지인지, 기존 대안이 뭔지를 정리했다. 여기서 3-funnel US launch 전략을 세웠다. 기존 고객 업그레이드, PLG 셀프서브, 세일즈 어시스트 — 세 갈래를 동시에 굴리는 구조.
"이 정도면 $30K MRR 달성할 수 있겠지"라는 감각을 파라미터로 분해했다. CPI, 전환율, ACV, 파이프라인 속도를 변수로 놓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Funnel Simulator와 MRR Simulation 도구를 직접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만들면서 "내가 어떤 가정 위에서 판단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셀프서브 전환율을 3%로 잡고 있었는데, 시뮬레이션에 넣어보니 그 3%가 달성되려면 프리 티어에서 최소 6개월의 사용 데이터가 필요했다. 감으로 했으면 절대 안 보이는 것들이었다.
흩어져 있던 전략 메모, 인터뷰 기록, 리서치 노트도 CorePlan Library로 구조화했다. 개인의 GTM 감각이 팀 전략이 되고, 팀 전략이 조직의 플레이으로 만들고 있다.
3. 워크플로우를 직접 설계하다: 남이 만든 도구 말고 내 도구
여기까지 오면 기존 SaaS 도구로는 안 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Salesforce 대시보드에 내가 원하는 뷰가 없다고 CSM한테 요청 넣고 2주 기다리는 대신, 직접 만들면 된다.
GTM War Board를 만들었다. 세그먼트별 파이프라인 현황, 딜 스테이지 이동, KPI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을 하나의 칸반 보드에 올렸다. 위클리 파이프라인 리뷰를 이 보드 하나로 끝낸다.
Internal Marketing Engine에서 새로운 기능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Google Ads, Salesforce, Webflow, Amplitude, ABM 파이프라인을 하나로 엮었다. GTM 담당자가 마케팅 오퍼레이션 전체를 돌릴 수 있는 구조다. 리드 소스별 CAC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예산 배분을 조정한다.
Subscription Review Analyzer는 앱스토어 리뷰를 11개 렌즈로 분석해서 이탈 원인을 진단하는 도구다. GitHub에 공개했더니 잠재 고객이 먼저 써보고 연락이 왔다. 영업에서 말하는 engineering as marketing, 도구 자체가 리드 마그넷이 된 거다.
Claude Code 자체를 영업 도구로 커스터마이징한 Sales Plugin도 만들었다. 콜 요약, 파이프라인 리뷰, 매출 예측까지 3개 커맨드와 6개 스킬. 세일즈콜 끝나고 5분 안에 follow-up 메일 초안과 CRM 노트가 나온다.
SaaS 도구를 10개 구독하는 것과 자기 워크플로우를 직접 설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게임이다. 전자는 남이 정의한 프레임에 내 영업 프로세스를 끼워 맞추는 거고, 후자는 내 영업 프로세스에 맞는 프레임을 직접 만드는 거다.
4. 전부 $0으로 돌아간다
이 15개 시스템의 월간 운영 비용이 $0이다. 진짜로.
| 인프라 | 비용 |
|---|---|
| GitHub Actions (크론잡) | 무료 티어 |
| Groq API (LLM 스코어링) | 무료 |
| Supabase (데이터베이스) | 무료 티어 |
| GPT-4o-mini (이메일 분류) | ~$2/월 |
서버 없다.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시간도 거의 없다. 한번 세팅하면 알아서 돈다.
만드는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시대다. 코드든, 워크플로우든, 대시보드든. 그러면 남는 건 하나다.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는 능력. 어떤 문제가 파이프라인에 병목을 만들고 있는지, 어떤 지표를 봐야 딜이 멈춘 이유를 알 수 있는지. 이건 현장에서 영업을 해본 사람만 안다. AI가 대신 못 한다.
5. 플라이휠이 돌기 시작하면
암묵지를 명시화했더니 → 모르던 게 보이고 → 그걸 풀면서 → 또 다른 암묵지를 명시화하게 됐다. 순환이다.
처음엔 리드 퀄리피케이션 하나 만드는 데도 오래 걸렸다. 근데 하나를 만들고 나면 다음 건 더 빨라진다. API 연동하는 법을 알고,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아니까. 맥락이 쌓이면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붙는다.
이건 선형적인 성장이 아니다. 복리다. 한 바퀴 돌 때마다 다음 일이 쉬워지고, 다음 일에서 배운 게 이전 일을 개선시킨다.
15개 시스템을 만든 게 대단한 게 아니다. 대단한 건,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거다.
예전엔 리드를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로 시작했다. 지금은 "이 리드는 72점이고, 회사 검증은 통과했지만 이메일 도메인 매칭이 약하다"가 먼저 보인다. 예전엔 GTM 전략을 "이 정도면 되겠지"로 잡았다. 지금은 전환율 1% 차이가 MRR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내 판단이 빨라진 게 아니다. 판단의 해상도가 달라진 거다. "그냥 이렇게 하는 거지"로 넘기던 것들을 전부 꺼내놓고, 숫자로 분해하고, 시스템으로 만들었더니, 내가 보는 세계 자체가 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