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게 추모하는 마음으로, '너와 나'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을 이처럼 간절하고 사무치게 전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이동진

순수하게 추모하는 마음으로, '너와 나'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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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중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youtu.be/5TuYMPn9WYU?si=a3ngI2L_gZ3g_U4X

'너와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2023년 대한민국 추천 영화 TOP10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하고 최대한 검색을 해보지 않고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는 김시은 배우가 <다음 소희>에도 출연했었는데, 해당 작품도 인상깊게 봐서,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예매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는데 독립영화라서 일반 상영관에서 보기는 어려웠다. 덕분에 처음으로 압구정에 있는 독립상영관을 찾아가 볼 수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두 명의 여자고등학생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둘 간의 미묘한 감정이 흐르고 좁게 보면 사실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여러 갈등을 겪는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언제든 틀어질 수 있는 민감한 순간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보는 내가 애가 탈 정도로 미묘해서 짜증나기도 했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주인공은 모든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온갖 애간장이 타다가 고백이 성공하면, 그간의 고생을 보답받는 선물같은 느낌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생명이 있다면 마주하게 되는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급을 피하지 않는다. 배경은 단원고이고, 주인공들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 안산에 자주 놀러갔었을 때 봤던 중앙역과 그 일대 사거리가 전부 보인다.

꿈 속에서의 상황은 더욱 심오한 의미를 나타낸다. 하은이가 죽은 것을 꿈에서 보는 세미는 결국 자신도 죽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하은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이 꿈을 통해 세미는 자신이 없는 삶을 상상하며 더욱 간절하게 마지막을 보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각자 마주하는 마지막에 영화관에 정말 수 많은 울음이 터져나왔고, 나또한 그랬다.

사실 영화를 보는 안에서 세월호를 다뤘다는 것을 크게 눈치채지 못했는데,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안에서 표현하는 이야기들과 연출에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 또한 마지막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중에서야 세월호와 관련되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 머리가 정말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이 사실을 알고 본 사람들은 얼마나 영화관을 뛰쳐나가 목놓아 울고싶었을지 가늠이 안됐다. 그리고 저번 주말 집에서 혼자 다시 영화를 감상했는데, 터져나오는 울음을 이번에도 막을 수 없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10주기다

세월호 - 나무위키

오늘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된지 10년이 지난 날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졌었고, 아직도 그 날이 너무나도 나에겐 선명하다. 그동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또 되뇌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세월호를 하나의 정치적인 이념의 문제로 다루고, 여야 막론 다양한 논쟁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부터 점점 관심을 멀리하게 됐다. 사실 짜증났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서, 본질적인 부분과 거리가 멀어지는 이야기들이 싫증났다. 패션추모도 지긋하고 언제까지 추모해야하냐, 지겹다, 왜 천안함은 추모 안하냐 이런 이야기들이 아 정말. 이제 너무 지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안전하게 바뀌어있을까?

화제 경보가 울리면 뛰쳐나가는 사람을 막고 벌을 주는 모습들이 아직도 여전하다

그냥 정말 순수하게.

사람이라면, 생명이라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이해해보면 좋겠다.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을 이처럼 간절하고 사무치게 전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 이동진, 영화평론가

끝으로 GV에서 감독님들의 말을 빌려 마친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 영화를 쓸 때 뭔가 슬픔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슬픔이 주는 고통이나 비탄 좌절 같은 것에 잠기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마냥 이렇게 서정적으로, 마냥 감정적으로 이 영화를 대하진 않았었거든요. 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지금 당장 이 영화를 보시고 슬플 수 있고 어떤 상실을 겪고 난 다음에 슬플 수 있고, 좌절할 수 있고, 더 이상 살기 싫어 질 수 있겠지만 뭔가 이 슬픔에 잡아 먹히지 않고 계속해서 이겨 내려고 하고 어느 순간 그 슬픔이 동력이 됐을 때,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무언가 그래도 내 주변에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어쨌든 저희가 영화를 찍었고, 세미가 항상 거기 있고, 항상 안아줄 것이기 때문에 세미를 한번씩 찾아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슬픔이 어떤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조현철 감독님
 

“영화의 하은이 같은 친구를 몇 명 알거든요, 입맞춤을 했던 사이인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너무나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친구들을 알아요. 그리고 그 친구들이 지금 얼마나 씩씩하게 살고 있는지도 알아요. 버스를 탄 하은이는 울지만 수업을 들으러 갈 것이고, 또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할 것이고, 한 3년 쯤 지났을 땐 또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만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겠죠. 그렇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거든요. 하루하루를 또 새롭게 살면서 살면서 잊지 않는 것, 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추모의 마음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실은 이 영화가 또 시월의 마지막에 개봉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고요. 추모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영화여서 그리고 저의 그 열 여덟 살로 기억되는, 나도 갖고 있는 첫사랑의 어떤 마음이 결국은 오늘을 지탱하는 마음들 중엔 그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모든 것들 이 아름다운 삶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감독과 배우들 모두에게 고맙고...”
- 변영주 감독님
 
231027 너와 나 GV에서

티빙이나 유튜브, 웨이브를 통해서 5천원이면 다시 볼 수 있다. 혹시 보기가 망설여진다면, 후기글(인스타 스토리도 가능)을 SNS에 남겨줄 것을 약속하고 2명 정도에게 영화값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